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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bing/서울경기권

【07.11.18(일)】가깝고도 먼 산.. 안산,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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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산! 안산(鞍山) ~ 인왕산(仁王山)

 

 

※움직임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 안천약수터 - 봉수대(296) - 남능선 - 휴먼시아아파트 - 금화길 - 독립문 - 단군성전 -

황학정 - 서울성곽길 - 국사당 - 선바위 - 인왕산정상(338) - 기차바위 - 자하문(4시간)

 

 

백련산이나 안산, 인왕산은 북한산보다 더 시내에 근접되 있는 산임에도 쉽게 찾아지질 않는 산이다.

오후 5시에 고향친구들 모임이 있어 연가정기산행에 참석할 수 없어 그동안 가까이 있으면서도

한번도 찾지않았던 안산과 인왕산을 찾았다.

참 오랫만에 홀로산행을 떠난다.

08시30분, 현관문을 나서니 찬바람이 쌩하니 얼굴을 시렵도록 때린다.

기온도 영하3℃로 뚝 떨어지고..

겨울이 성큼 찾아온 듯 하다.

 

 

 

 

 

 

 

 

 

 

 

 

 

 

 

 

 

 

 

 

 

 

 

 

 

 

 

 

 

 

 

 

 

 

 

 

 

 

 

 

 인왕산과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보현봉, 형제봉까지의 마루금이 펼쳐지고

 

 

 

 

 

 

 

 

 

 

 

 

 

 

 

 

 

 

 

 

 

 

 

 

 

 

 

 

 

 

 

 

 

 

 

 

 

 

 

 

 

 

 

 

 

 

 

 

 

 

 

 

  

 

 

 

 

 

 

 

 

 

 

 

 

 

 

 

 

 

'독립문'

앞에 두개의 기둥은 '영은문(迎恩門) 柱礎'

 

 

 

 

 사직터널을 지나

 

 

 

 

 

 

 

 

 

 

 

 단군성전

 

 

 

 

 

황학정

 

 

 

 

 

 

 

 

 

  

 

 

 

 

 

 

 

 

 

 

 

 

 

 

 

 

 

 

 

 

 

 

 

 

 

 

 

 

 

 

 

 

 

 

 

 

 

 

 

 

 

 

 

 

 

 

 

 

 

 

 

 

'인왕산 선바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입석바위로 커다란 바위의 군데군데가 묘한 모습으로 패어져있다.

선바위는 부인들이 이 선바위에서 아이 갖기를 기원하는 일이 많아 "기자암(祈子岩)" 이라고도 한다.

선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長衫)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 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선바위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상(像)이라는 전설도 있고 이성계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다.

일제가 남산에 자신들의 신사를 세우면서 남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을 이곳 선바위 곁으로 옮기게 한 뒤로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잉과 더욱 밀접하게 되었다.

국사당은 무신(巫神)을 모시는 제당으로 굿을 행하는 곳이어서 국사당 뒤에 있는 선바위와 연계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옛 문헌에는 조선 태조 때 한양천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양 도성을 쌓을때 선바위를 무학대사는 도성 안에 포함시키자고 하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자고 하였다.

이때 정도전이 말하기를 "선바위를 도성 안에 들이면 불교가 성하고 밖에 두면 유교가 흥할 것이라 하니

태조가 정도전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였다.

이에 무학이 탄식하며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 다닐 것이다." 라고 하였다는데,

이런 것으로 보아 조선초기부터 이 선바위가 인왕산의 특징적인 암벽으로 주목을 끌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신령이 깃든 산이라선지 이곳저곳 바위마다 무속행위를 한 흔적과 낙서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안산에서 인왕산을 연계할땐 능선 끝까지 가는것보단 중간 정자(원)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쪽(빨간선)으로 하산해서 인왕사쪽으로 오르는게 좋다

 

 

 

 

 

 

 

 

 

 

 

 

 미륵바위

'얼굴바위'라기도하고, 아슬아슬하게 얹혀있다하여 '아슬바위'라기도 하고, 맷돼지가 코를 들고있는 상이라해서 '맷돼지바위'라기도 하고. 부처바위 등..

보는이들마다 제각각이다

 

 

 

윗쪽은 '달팽이바위'라하고 아랫쪽은 '장군바위, 투구바위'라 한다.

 

 

 

 

 

 커다란 바위주변엔 무속행위 적발시 처벌한 다는 안내판을 세워 놨지만 텐트까지 쳐놓고...

 

 

 

 

 

 

 

 

 

 

 

 

 

 

 

 

 

 

 

 

 

 

 

인왕산 정상(338)

 

 

 

 

 

 

 

 

 

 

 

 청와대

 

 

 

 

 

경복궁

 

 

 

 

 

기차바위

 

 

 

 

 

치마바위의 유래

인왕산 치마바위는 중종의 첫번째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와 관련된 내용이다.

조선조 16C 초에 연산군의 실정으로 중종반정[(1506)]이 일어나 중종이 등극하게 되었다.
이 때 중종의 비는 신수근의 딸 신씨였는데, 당시 국구였던 신수근은 중종 반정때 죽임을 당하였다.
반정 공신들은 죄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 하면서 종묘 사직의 대계를 위하여 왕비의 폐위를 수차 요청하였고,

이에 중종도 어쩔 수 없이 왕비 신씨를 폐하여 자기 집으로 가 있게 하였다.

그러나 십여년이나 화락하게 지내던 그 지극한 정분을 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왕도 가끔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의 신씨 집을 멀리 바라 보곤 했다.

한편 신씨는 폐비는 되었지만 중종에 대한 깊은 사랑의 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상감께서 늘 경회루에 오르시어 자기 집을 바라보신다는 소문을 듣고
신씨는 전날 대궐 안에서 입던 자기의 치마를 경회루에서 바라 보실 때 눈에 잘 뜨이도록 인왕산 높은 바위 위에다 걸었는데,

아침에 내다 걸고, 저녁에는 거둬 들이었다고 하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뒷날 백성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한다.

 

 

인왕산과 뒤로 안산

 

 

 

 

 

안산과 백련산(우)

 

 

 

 

 

북악산(백악산)

 

 

 

 

 

 기차바위

 

 

 

 

 

 

창의문(자하문)

 

 

 

 

 

김신조 청와대습격사건때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