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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bing/서울경기권

【25.12.25(목)】55.인왕북악낙산 한양도성길

뵈오려 못 뵈는 님 눈감으니 보이시네

눈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 지이다.

-노산-

 

예수님 탄생과는 전혀 무관한 날

성탄절이다.

화이트 쿨쑤마쑤 대신 쪽빛 하늘이 가슴을 시원케 한 날

인왕에서 낙산까지 이어간다.

 

 

수성계곡-석굴암-인왕산-북악산-낙산-동대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로 나와 종로09번 버스를 타고 수성동 계곡으로 간다.

10분정도

 

 

 

 

 

10:25

버스종점과 맞닿아 있는 수성동계곡으로 들어서니 하수구에서 풍겨나오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첫 인상치곤 그랬다.

계곡 앞에는 겸재 정선의 <수성동> 그림이 표지판으로 서 있고 표지판 뒤로 너른바위 사이로 장대석이 걸쳐져 있는 기린교가 보인다.

 

 

 

기린교

 

 

 

 

 

 

기린교는 폭 70cm, 두께 35cm, 길이 3.7미터의 장대석 두 개를 이어 붙인 다리다.
겸재의 <수성동> 그림에도 이 다리가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

여기서 '기린'은 고서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뿔 달린 사슴 모양에 온몸에 비늘이 덮인 말발굽을 가진 동물로,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서로움의 상징이라 한다.
집안을 일으킬 뛰어난 인재를 의미하는 ‘기린아'(麒麟兒)도 여기서 기인한거다.

 

 

겸재 作 <수성동>에 기린교가 그려져 있다.

 

 

 

 

 

 

송미술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는 장동팔경첩은 겸재가 70대 중반쯤에 그린 작품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또 하나의 장경팔경첩은 80대에 들어 그린 작품들인데 앞선 장동팔경과는 畵法의 차이가 보인다.

 

여기서 장동(壯洞)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일대로 창의문(彰義門) 아랫동네라고 하여 창의동, 장의동, 장동 등으로 불리던 곳이다.

장동 일대는 율곡학파의 여려 명현들이 태어나 살던 곳으로 정선도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노닐던 곳이었다.

 

 

 

서울이 팽창하면서 1971년 인왕산 자락에 9개동의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로인해 수성동은 묻혔고 계곡과 산은 아파트에 가려벼렸다.

그러다 수성동계곡 살리기 일환으로 2007년 옥인시범아파트 철거가 결정됐고, 2011년 7월 옥인시범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기린교가 드러났다.
서울시는 옛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겸재의 그림 <수성동>을 참고해 공사했다곤 하는데 겸재의 <수성동>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저 정자 인근에 안평의 별서 '비해당'이 있었을게다.

'비해(匪懈)'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숙야비해 이사일인'(夙夜匪解 以事一人)에서 따온 것으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한 사람을 섬긴다'는 뜻으로 당호는 아버지 세종이 직접 내렸다 한다.
똑똑하고 뛰어난 셋째 아들에게 딴 마음을 먹거나 엉뚱한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고 큰 형(문종)만을 잘 보필하라고 당부한게다.
안평은 그런 아버지의 당부을 잊지않고 형 수양대군에 맞서다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비해당은 세종의 둘째 형이자 안평대군의 삼촌인 효령대군에게 주어졌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졌다고 한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보면 그림 아랫쪽에 기와건물이 있는데 '비해당'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철거된 아파트 일부를 보존해 놓았다.

 

 

 

 

 

 

 

 

 

 

 

 

 

석굴암으로...

 

 

 

 

 

 

11:00

인왕약수터를 지나 잠시 조망처로 올라 철인님이 지고 온 막걸리 두병을 깐다.

이제 겨우 700미터정도 진행했는데... ㅎ

 

 

 

 

11:20

석굴암

 

 

 

 

 

 

 

 

 

 

 

 

 

 

 

 

 

 

 

산신각

 

 

 

 

 

 

 

 

 

 

 

 

 

장희빈 기도처를 찾아 올라선다.

 

 

 

 

 

 

 

 

 

 

 

 

 

여기까진 잘 찾아 왔는데 끝내 장희빈 기도처는 찾질 못했다.

 

 

 

 

 

 

장희빈 기도처<펌>

숙종때 희빈에 오르고 폐위된 후 인왕산 자락에서 살면서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다 한다.

하얀소복을 입은 조형물은 '궁안대신'이라기도 하고 '장희빈'이라고도 한다고...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된 후 중종을 그리워 하며 매일 인왕산에 올라 바위에 분홍치마를 펼쳐 놓았다 하여 이름 붙혀진 치마바위

 

 

 

 

 

 

장희빈 기도처를 못 보고 내려선다.

 

 

 

 

 

 

마애미륵존불

 

 

 

 

 

 

안내판이 없어 정확한 연대기는 모르나 조선시대쯤으로 추정해 본다.

 

 

 

 

 

 

산신할미의 코와 동자얼굴을 수술 해 놓았는데 아니한만 못 하다.

 

 

 

 

 

 

 

 

 

 

 

 

 

12:35

이제부턴 도성길로 쭈욱~

 

 

 

 

 

 

 

 

 

 

 

 

 

 

 

 

 

 

 

 

 

 

 

 

 

 

청명한 쪽빛 하늘이 가슴을 시원케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돌아보면 부끄럼 많은 인생이다.

 

 

 

 

 

13:50

창의문을 지나 긴 계단으로 이루어진 자북정도(紫北正道)길을 따라 백악마루로 올라선다.

돌고래쉼터에서 서남쪽으로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 조만간 개통될 것 같고 성곽 일부구간이 무너져 새로운 데크길도 생겨났다

 

 

 

 

숨 한번 고르면서 대원군 별서를 내려다 본다.

원래는 안동 김씨 세도가의 일원으로서 철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김흥근의 별서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이었다.

삼계동정사가 있는 자리는 경치가 굉장히 좋기로 유명했던 곳으로,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역시 이 주변의 경치에 반해 근처에 별서 무계정사를 세울 정도로 빼어난 풍광에 반한 고위층들이 별서를 두던 동네였다.

고종 즉위 후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야사 하나가 있다.

안동 김씨 세도를 꺾고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세도가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흥근의 경치좋은 삼계동정사를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흥근이 순순히 내줄 리 만무했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한 가지 묘수를 고안해 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삼계동정사에 행차하게 한 다음 하루 자고 가게 한 것. 조선의 관례에 따르면 임금이 하루라도 머문 장소는 일종의 불가침 장소가 되어서 감히 신하가 머물 수 없었고, 결국 김흥근은 눈뜨고 흥선대원군에게 삼계동정사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별장 주변의 장엄한 바위에 감탄한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호를 '석파(石坡)'로 짓고 별서의 이름도 '석파정(石坡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4:20

백악마루

예전엔 저 바위도 못 올라가게 막곤 했다.

 

 

 

 

청운대에 있는 목련이 계절을 망각했는지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게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하고 있다.

오늘 저녁부터 강추위가 몰려온다 하는데 깜놀할게다.

 

 

 

 

 

14:30

청운대

 

 

 

 

 

 

 

 

 

 

 

 

곡성으로..

 

 

 

 

 

 

曲城

 

 

 

 

 

 

14:55

숙정문

 

 

 

 

 

4대문 중 하나인 숙정문(북대문)은 원래 門樓가 없었는데 1972년에 문루를 세웠다고 한다.

 

 

 

 

 

 

 

 

 

 

 

 

 

소호님이 쿨쑤 선물로 준 와인도 나눠 마시고...

 

 

 

 

 

 

 

 

 

 

 

 

 

날이 추워져 간다.

 

 

 

 

 

 

15:50

마전터에서 뜨뜻한 소고기국밥과 굴전,파전과 함께 막걸리잔을 부딪친다.

여기서 마전이란 馬와 麻는 아무 상관이 없고 생베나 무명을 삶거나 빨아 희게 하는거라 한다.

마전터는 그런일을 하던 곳이라고..

 

 

 

한잔 걸치고 나오니 걸음을 끝낼 줄 알았는데 왠일인지 낙산까지 이어가자고들 한다.

그라믄믄 땡큐지라요. ㅎ

경신중학교앞를 지나는데 지친해가 피를 토하고 있다.

 

 

 

 

 

 

 

 

 

 

 

17:20

헤화문을 지나 낙산구간으로 들어선다.

 

 

 

 

 

 

 

 

 

 

 

 

 

커피 한잔씩 테이크아웃해서...

 

 

 

 

 

 

 

 

 

 

 

 

 

 

 

 

 

 

 

 

 

 

 

 

 

 

 

 

 

 

 

 

 

 

 

 

 

 

 

 

 

18:05

동대문역에서 걸음을 마치고 1호선 전철에 몸을 싣고 종3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