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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bing/북한산

【09.01.04(일)】02.3將臺 탐방산행

북한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삼각산은 예로부터 인간의 사욕이 불러내는 치열한 각축장이요 안식처였다.

  삼각산을 지키기 위한 시대별 상황은 너무나 치열하여 백제의 개로왕은 서기137년에 북한산에 성을 구축하였고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백제가 구축한 성을 무너뜨리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삼국시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신라의 진흥왕은 친히 위봉에 올라 비(북한산성비)를 세워 북한산의 주인임을 만천하에 공표하였다.

(이 때가 진흥왕 즉위 16년,서기 555년이고.. 추사 김정희에 의해 발견 된 진흥왕 순수비는 국보3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에 모셔져 있고  현재 위봉에 세워져 있는 순수비는 모조품이다. 

진흥왕의 순수비는 경상남도 창녕과 함경남도 마운령. 황초령 등 네 곳에서 발견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반도의 국경과 일치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수도를 개성으로 옮겨 관심권에서 멀어졌으나 조선시대에는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에  인조가 왕위를 물려받아

기강을 바로잡아 갈 무렵,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의 약점을 놓치지 않았던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이르켜 남한산성에서 조선을 굴복시키고

소현세자.봉림대군,인평대군의 삼형제와 예조판서인 김상헌 등을  볼모로 잡아가며  조공을 받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속국을 강요하며  삼전도(지금의 송파구 삼전동)에서

군신(君臣)의 예를 갖추어 삼배의 예를 올리게 했으니  우리역사에 있어 일제감점기와 더불어 가장 굴욕적이며 치욕스런 사건이며 "환향녀"와 "호로자식"등의 피해자들을 속출하게 하였다.

 

훗날 왕위에 오른 효종(인조의 둘째아들로 청나라에 끌러가 수난을 당하다 환국하여 북한산에 요새를 구축하였는데 규모는 방대하여 문14개 연못26개 우물이 99개였다)은 

이러한 굴욕을 되풀이 않게 하기 위하여 북한산에다 요새를 만들고 이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14성문과  3장대(將臺=요새를 방어하기 위한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한 진지)를 설치하였다.

 

3장대란 문수봉 아래의 남장대, 시단봉의 동장대. 노적봉의 북장대를 가리키고, 14성문은 북한산의 성곽에 설치한 출입문들을 일컫는 것으로 이는

한양의 성문에서 유래하여 문자만 바꾸어 놓은 것으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남대문은 “대남문”으로 동대문은 “대동문”으로 서대문은 “대서문”등으로 바꾸어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게 하였다.

 

.....운해님 글중에서 옮김

 

 

 09년 산행점괘를 볼겸해서 일찍 집을 나서 한강둔치로 레츠~ 꼬오 합니다

무슨점괘냐구요?

오늘 일출모습을 보면 09년 산행점괘가 보일것 같아...

ㅎㅎ

 

07:50

여명이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08:00

 

 

 

 

 

08:08

 

 

 

 

 

아침햇살속에 북한산이 열립니다

 

 

 

 

 

09:45

09년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습니다

산성통제센터-기린봉-북장대지-훈련도감-노적사-행궁터-남장대지-보국사지-보국문-대동문-동장대-천해대-태고사-산성통제센터(6시간40분) 

 

 

 

반갑습니다

 

 

 

 

 

 

 

 

 

 

 

원효봉과 염초봉 그리고 상운사

 

 

 

 

 

의상능선과 국녕사 좌불

 

 

 

 

 

 이쯤에 북장대가 있었지 않았으까... 그러나 확실한 장소는 아직 알려져있지않다

 

 

 

 

 

 

 

 

 

 

 

염초봉-백운대-만경대

 

 

 

 

 

기린봉에서

 

 

 

 

 

훈련도감터로 내리멍

 

 

 

 

 

 

 

 

 

 

 

노적사

 

 

 

 

 

학상~ 낼 아부지 모시고 온나

 

 

 

 

 

북한승도절목, 선정비군, 산영루지

 

북한승도절목 : 평탄한 암반에 음각된 명문은 조선 철종 6년(1885)에 북한산성내 승도(승병)의 대장인 팔도도총섭의 교체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을 없애 산성수호에 완벽을 기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정비군 :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수성대장격인 총융사의 재임시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대부분이 19세기에 세운 선정비들로 암벽에 새겨진 것을 포함하여 21기로 추정된다

산영루지 : 계곡의 암반위에 남아있는 장주형 초석은 북한산성 축성즈음에 건립된 산영루가 있던 정자터이며 20세기 초에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밥묵고...

 

 

 

 

 

 

 

 

 

 

 

 남장대지에서

 

 

 

 

 

 

 

 

 

 

  

 

 

 

 

 

 

대동문

 

 

 

 

 

동장대

 

 

 

 

 

 

 

 

 

 

 

태고사 원중국사탑

고려말의 승려인 원중국사 보우(1301-1382)의 사리탑

 

 

 

 

태고사

 

 

 

 

 

 

 

 

 

 

 

뒤풀이

 

 

 

 

 

 

 

 

 

 

 

 

 

 

 

 

 

한남금북정맥 완주기념메달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