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오색빛깔 수 놓은 한계산성길
[ 11.10.16.일/지기지우 ]
새벽산행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갑자기 시상이 깜깜해지드만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에 강한 빗줄기가 한동안 쏟아진다.
저녁무렵 비가 그치면서 기온이 떨어지는게 새벽산행때만해도 여름옷 입고도 쌀쌀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한나절사이에 겨울이 찾아 온 느낌이다.
겨울옷으로 단디 무장하고 토욜밤 느즈막히 설악으로 요이~ 땅
사실 오늘은 독주골 봉사산행이 있는날인데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취소하고 지기지우와 함께한다.
독주골을 취소하고나니 이리 홀가분한데 뭘라꼬 여러날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다시는 그 짓거리는 안할끼라...
전날 한숨도 못잔채 새벽산행을 해선지 왠만해선 무박산행길에 버스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데 쏟아지는 잠 앞에선 어쩔 수 없었는지 깨고보니 내설악휴게소다.
내설악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꿈나라에서 헤매이다 4시반쯤 자리에서 일어나 된장찌게로 습관처럼 새벽참을 먹은 후 옥녀탕입구로 이동 새벽 5시45분 지금입출구역으로 살며시 스며들어간다.
깜감한 새벽하늘 구름사이로 간간히 별빛도 보이는게 어제새벽 북한산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갖어보는데...
옥녀탕들머리(05:45) - 한계산성(06:35) - 천제단(08:10) - 안산(11:50) - 두문폭포(13:30) - 12선녀탕(14:00) - 남교리(15:30)
06:35... 계곡을 벗어나 2분여 된비알을 오르다보니
산행시작 50여분만에 한계산성에 도착한다
한계산성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산성으로 강원도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만들어진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전체 둘레는 1.9km, 높이 1.3m로 상당히 큰 산성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무너졌다. 남쪽에 6m 높이의 성문을 두고 양쪽으로 성벽을 쌓았다. 주변의 잡석을 조금씩 다듬어 쌓는 고려 말기의 산성축조 양식을 따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둘레가 6278척(1902m), 높이 4척(1.3m)이라 기록되어 있어, 상당히 큰 규모의 산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신라 경순왕 때 지어져 고려와 후백제군이 대치하여 혈전을 벌이던 곳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성안에 망경대가 있어 경순왕이 망해가는 신라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또한 『고려사』, 『조휘열전』에는 고종 46년(1259)에 몽고군과 조휘가 이끄는 반란군이 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산성방호별감 안홍민이 야별초를 거느리고 출격하여 무찔렀다는 기록이 있다. 자연석을 다듬어 쌓고 군데군데 쐐기돌을 박은 성벽은 현재도 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안에는 우물터, 대궐터, 절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우물터는 찾을 수 없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기와장들과 함께 대궐터와 절터를 알아볼 수 있다.
한계령방향
1200고지 윗쪽으론 짙은구름층이 깔려있는게 예감이 별루 안좋다.
위에서
아래서
구멍바위
잠시 쉬었다가
빛이읍쓰니...
가리봉은 죙일 샴푸중이다
저곳으로 오른다
가끔씩 아침햇살도 드리워지고
08:10(2시간25분경과)...천제단
마의태자와 한계산성
마의태자는 아버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문서를 보내던 때 금강산으로 떠났다고 한다. 한계산성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태자가 신라를 부흥시키려고 쌓은 산성으로 알려졌다.
한계산성 안 동쪽 산등성이에 천제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고려 광종 때까지 신라 유민이 이 부근을 장악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치마바위 위쪽으로는 죙일 샴프질만 한다
안산까지 이어진 산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몽유도원
빛내림보단 빨리 하늘이나 열어줬음 좋겠다
1100고지를 넘어서니 슬슬 개스가 차여가고
셔터속도보다 빠른 하여튼님... 하여튼 빠릅니다 ㅋㅋ
젖어있는 바위길은 미끄럽기만 하고...
때론 몸개그도 해야한다
밤 까먹는 다람쥐들 가토~ ㅎㅎ
등성이를 오를땐 강한 비바람에 몸도 휘청이고 젖은 장갑에 손도 시렵고... 으~ 춥따~
10:35...이곳을 내려와 아늑한곳에 자리를 하고 아점타임을 갖는다.
요산님의 스토브덕에 젖은 장갑도 말리고...
11:45(6시간경과)...안산에 올랐으나
뵈는게 읍따
기념사진이나 남기자구요
안산에 올랐던분들 내려와 갈림길에서 우회길로 가다 돌아오는중
요산님이 앞장설땐 절대 요주의입니당 ㅋㅋ
수리수리 어수리
어느새 북사면쪽은 나뭇잎들을 다 떨궈낸채 겨울준비에 들어간 듯 하다
곳곳에 정체가 심하다
두문폭포 상단
전망데크도 읍구 아랫쪽으로 접근하기도 쉽지않구...
폭포아랜 커다란 沼가 있는데 소의 모습은 간데없고 바로옆 지류에서 사태로 흘러내린 돌무더기만 그득 쌓여있다.
사태로 인해 번듯한 계곡이 생겨났으니 조만간 한대장님 탐사가지 않을런지...
12선녀탕이 시작된다
아주 오랜옛날 12명의 선녀가 내려 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탕은 8개 밖에 없다
폭탕폭탕... 열두선녀들이 홀랑벗고 목욕하던 탕들이 이어진다.
젤루 밑에있는 탕에서 목욕하던 선녀는 막내였을까 아님 끝발낮은 선녀였을까
위에 열한명중 누군가는 쉬도 혔을텐디.. ㅋㅋ
복숭아탕
여덜개의 탕 중 일곱번째로 폭포아래에 복숭아 모양을 한 沼가 있어 복숭아탕으로 불린다.
설악산의 이름 난 여러 장소중에서도 십이선녀탕이 제일 아름답다고도 하는데 보는시각들이야 제각각이니...
막내탕
내려오는길엔 호랭이가 장가가는지 여우가 시집가는지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응봉폭포
15:30(9시간45분경과)...다 내려왔다
뒤풀이 하면서 마신 소맥 석잔에 넉다운됐다 깨나보니 서울이다.
시계를 보니 8시도 안된시간... 귀경길이 많이 막힐줄 알았는데 두시간 반만에 사당에 도착한다.
집으로 오면서 8시뉴스를 보니 설악을 찾은 인파가 최고조였다는디... 모야 그람 그 많은 사람들은 뱅기타고들 갔나?
구름의 심술로 햇빛도 읍구 정상에서의 조망은 꽝이었지만 그래도 짙어진 가을색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던 설악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인원 안전하게 리딩해주신 한대장님 늘 수고만땅이구요 함께한 지기지우님들께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함께함이 있기에 어려운길도, 힘든길도 거뜬히 오르내릴 수 있었지않나 싶습니다.
뒤풀이 화끈하게 쏘신 수희님.. 베리베리 고자이마쓰여유
고맙습니다
'Climbing > 설악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05.19(토)】22.귀때기청봉 털진달래 (0) | 2012.05.19 |
---|---|
【12.01.21(토)】04..북설악 마산봉 (0) | 2012.01.22 |
【11.09.25(일)】52.소승폭포 & 쉰길폭포 (0) | 2011.09.26 |
【11.09.10(토)】50.칠선골-화채능선 (0) | 2011.09.11 |
【11.08.28(일)】48.널협이골-옥수골 (0) | 201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