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속해 있지만 접하기 쉽지않은 삼정산과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칠암자 순례산행 공지가 있어 맨 처음으로 꼬리를 잡아본다
한명..두명.. 어느새 20명까지 채워지고 마감공지까지 오른다
근데 산행일을 며칠앞두고부터 한명, 두명 산행취소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산행 당일까지 아무연락도 없이 빠지는...
최종탑승인원 14명이다.
적정인원이 채워져 마감공지를 한후 몇몇분은 갈 수 없느냐는 문의도 있었다는데...
결국 참여하는분들의 회비부담은 늘어날수밖에 없고..
늦게 신청한분들은 가지도 못하고...
25인승 버스에 14명이 탑승하니 그나마 공간이 다소 여유가 있다는데 위안을 삼고 현지에서 대장님과 두분이 합류해 17명이 칠암자 순례길에 나선다
보통 칠암자 순례길은 무박산행을 하는편인데 당일산행으로 기획되다보니 시간상으로 빡빡한 느낌이고,
또한 이른시간에 모이다보니 전철 첫차도 운행되지 않아 달구지로... 택시로...
주차비...택시비... 무박산행때보다 경비가 더 들게된다
다음에 비슷한 산행시에는 참고할 부분이다
※함께한님들( 유정대장님 리딩)
늘푸른,일산에,수목이,황장군,등빨,일중짱,이중짱,손오공,바위산,한용석,안개꽃,꽃님,햇살,썬보우,유정,유정1,유정2(17명)
※움직임(분홍색점) : 작전도로-도솔암-영원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15.5km/8시간)
10:30
양정작전도로를 따라 650고지까지 차량으로 올라 20여분의 시간을 줄입니다
해발 약650에서 강렬한 오전햇살을 받으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여기부터 눈코 다박으며 올라야합니다
초반부터 조릿대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도솔암가는길이 힘겹습니다
긴 너덜길도 걸어야 하고
시그널 하나 매달려 있지않은 발길흔적도 보이지 않는길을 개척하다시피하면서 오릅니다
그저 지날만한곳으로 무조건 오르면 알바할일은 없습니다
총총한 산죽길과 부러진 나무가지들은 발길을 더디게만 합니다
여기가 900고지쯤 되는곳입니다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도 더없이 좋고 대장님표 쮸쮸바가 죽여줍니다 ^^
곳곳에 예전 빨치산 공비들이 애용했다는 산죽비트가 많습니다
지능선 등짝에 올라서니 길이 선명해집니다
오늘도 힘들어하는 이짱님
결제받으러 사립문으로 들어섭니다
ㅎㅎ
결제[結制]
입제(入制)라고도 한다.
승려들은 안거라고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외출을 하지 않고 한데 모여 수행(修行)을 하는데,
하안거(夏安居)의 첫날인 음력 4월 16일과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되는 음력 10월 16일에 행하는 의식을 결제라고 한다.
또 여름의 결제를 결하(結夏), 겨울의 경우를 결동(結冬)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여름을 맺고, 겨울을 맺는다는 뜻이다.
12:05(1시간35분경과)
도솔암
영원사의 속암으로 이곳은 영원사에 유명한 방광사리탑을 남긴 청매스님의 수도처로 유서가 깊다.
영원사와 함께 전란에 잿더미가 됐다가 최근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전기도 안들어오고 스님한분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도솔암은 곧 도솔천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慾界) 6天중의 4天인 도솔천은 '만족하다' 라는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知足), 묘족(妙足)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만족함을 안다는 뜻이니 극락이 결국은 내 분수를 알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지
모든 것이 준비된 풍족한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일겁니다
극락의 모습이 이런걸까요?
도솔암은 고요하고 차분하며 평온합니다
도솔암 뒤 능선에 오르면
천황봉을 위시에서 좌우로 지리주능선이 파노라마같이 펼져 보입니다
지리주능선을 조망하고 다시 도솔암으로 내려섭니다
이번 칠자암순례길을 기획하고 리드 해 주신 유정 대장님입니다
무박2일코스를 빡빡한 당일코스로 짜집기 하시고 이끌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12:25(1시간55분경과)
이제 결제받고 영원사로 향합니다
도솔암 오름길과는 달리 영원사로 내려가는길은 넓직하고 유순합니다
영원사로 이어진 시멘트도로에 들어섭니다
13:05(2시간35분경과)
영원사(靈源寺)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한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라고 했다.
이 절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이곳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원사가 그 위용을 잃게 된 것은 여수 반란사건 때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이곳까지 찾아와 절터를 아지트로 삼으면서,
건물 등을 작전상 모두 불태워 없애면서부터다.
그 후 1971년 중건 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많은 부도들이 있는데 원당형의 둥근 석탑이 5기가 있으며, 대는 2층 탑신을 가진 조립형으로 되어 있다.
이들 부도들은 영원사의 유물로 추정되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탑, 청매탑 등
이름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들이 있다.
엽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필단사리 3층 석탑이 방광放光했다는 이야기 등도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주고 있다
영원사의 창건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8년 공부끝에 아무것도 잡지못한 영원은 허우적 산길을 내려갑니다
계곡을 내달리는 물소리도 건너 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도 영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공부가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한탄하며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습니다
그때 저 아래 풀밭에 어떤 노인이 빈 낚시대를 드리우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2년만 낚시질을 하면 큰 고기가 낚일터인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번득 스치는 깨달음이 있어 영원은 다시 지리산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영원은 크게 깨우치게 되고, 어릴때 출가한 자신을 자식처럼 아껴주던 스승을 찾아 단숨에 범어사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욕심이 많았던 스승은 먹구렁이가 되어 버렸고, 스 스승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머리를 부딫쳐 죽자 영원은 스승의 혼백을 소매에 담고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 갑니다
그 길에 어느 부부를 만난 영원은 스승의 영혼을 그 부부에게 주며
"열달 뒤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니 그 아이가 일곱살이 되거든 꼭 내게 데려오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 아이가 단명할 것이오"
라고 말하고 불사에 착수합니다.
그렇게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7년만에 절을 완성하니 그 절이 오늘의 영원사입니다
며칠 후 젊은 부부는 약속대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이는 총기가 있으나 욕심이 많아 스승인 영원대사의 근심을 삽니다
이에 영원대사는 아이를 방에 가두고 작은 문구멍을 뚫어주며 말하기를
"이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 들거든 말하거라" 라고 합니다
총기있고 눈 맑은 아이는 그날부터 공부에 들었고, 어느날 작은 문구멍으로 커다란 황소가 달려드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스님! 황소가 문구멍으로 들어옵니다!"
이로서 스승과 제자의 길고 긴 인연은 아름답게 끝납니다
우측 능선끝지점이 도솔암뒷쪽 능선에 올랐던 곳입니다
영원사 옆 느티나무아래서 꿀맛같은 점심시간을 갖습니다
칠
칠암자 순례길에 함께했던 동지들입니다
13:50(3시간20분경과)
이제 삼정산을 향해 또 한번 코박으며 힘을 씁니다
이곳부터 도마까지는 2017년 2월28일까지 출입금지 구간이라 합니다
14:15(3시간45분경과)
빗기재인듯 합니다
15:00(4시간30분경과)
삼정산(1,182)
산아래 하정,음정,양정마을을 합쳐 三丁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명선봉아래 연하천 대피소를 지나 형제봉 가기전 북쪽 능선길을 타면 별바위와 영원령을 거쳐 삼정산으로 이어집니다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서 나무사이로 만복대부터 세걸산, 바래봉으로뻗어내린 능선이 보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조망권은 별로입니다
반야 궁딩이를 바라 봅니다
유정님은 이곳이 세번째인데 올때마다 이곳 전망바위쪽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이 젤루 좋다 합니다
마냥 머물고 싶지만 빡빡한 일정에 아쉬움 뒤로한채 다시 발길을 재촉합니다
여기서 또 머물고 싶지만...
이곳이 삼정산 오름길인데 오름길로 다시 내려오기 싫다고 빨치산 공비들이나 댕기는 길로 올랐다 이곳으로 내려옵니다
15:20(4시간50분경과)
상무주암입니다
일찌기 보조국사 지눌은 상무주암을 천하제일갑지라 하였습니다
즉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탐낼만한 좋은 자리라는 뜻인데, 이곳 암자의 이름이 무주(無住) 즉 머물지 않는다는 그 의미가 자못 심장합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한들 그 자리만 탐내고 그냥 머문다면 끝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경계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모두 머무를 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머물면 썪습니다
그래서 권력도 장기하면 썪는가 봅니다
상무주암(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지리산 영원사의 末寺(말사)로써 삼정산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침을 얻은 곳이며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러나 별다른 부속건물도 없고 단정한 시골집 별채의 참선수도 암자에 불과한 것 같은데 오히려 산중의 호젓한 별장 같은
느낌마저 드는 곳이니 무릇 사찰이 위치한 곳은 역시 명당인 양인간속세를 벗어난 듯한 무릉도원 같다.
지금 이곳에는 현기스님이 홀로 수행중이시랍니다
스님의 근기가 하도 불같아서 암자 입구에 나무빗장이 걸린 날이면 기침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곳이라는데
오늘도 나무빗장이 걸려있어 안으로 들어가보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모습은 넉넉한 부처와 같습니다
머물다보면 썪을것같아 잠깐 머물다 발길을 옮깁니다
ㅎㅎ
위로 보이는곳이 삼정산 정상쪽입니다
15:40(5시간10분경과)
문수암
1947년 일본의 강점이 끝나고 나라는 광복을 찾았으나 불교계는 아직도 일본의 잔재가 많이 남아 전국의 절들은 대처승들이 차지하고 앉았고
서슬퍼런 조선불교의 불씨는 이미 꺼진듯 했다
그때 젊은 스님들이 문경 봉암사에 모여 조선불교의 부활을 다짐하니 이른바 '봉암결사' 이다
봉암사 결사는 성철스님을 중심으로 청담, 자운, 향곡, 월산, 혜암, 법전 등의 스님들에 의해 주도 되었는데 결사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은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 라는 것이었다
백장청규(생활지침)에 따라 '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의 정신을 생활화 하고 불법에 어긋나는 일체의 불사를 거부한것도 이때부터이다
혜암스님은 바로 이 봉암결사의 주인공 중 한분이시며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정진하시다가 그 아래에 터를 닦아 문수암을 만드신 분이다
문수암은 도봉스님이 84년부터 25년째 수행하고 있는 절이라 합니다
도봉스님은 혜암스님의 상좌(행자)였으며 그 인연으로 벌써 25년째 자리를 지키고 계시다 합니다
석축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문수암 옆에 거대한 석굴이 있는데 석간수를 받아내는 샘터도 있습니다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이라고 하나
아직 굴의 크기나 전설, 생성 유래에 대해 정확히 조사되지 않은 채 있다고 합니다
도봉스님은 이 굴에 대한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샘터(석간수)와 천인굴
도봉스님은 참 따뜻하고 재미있습니다
다른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들과 달리 미소로 맞아주시고 대화도 나눠주시니 정겹게 느껴집니다
이런 도봉스님도 한땐 사람들에게 지쳐 암자 근처엔 사람들 얼씬도 못하게 막아도 보고 암자 문에 못질하고 도망도 가봤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이젠 지리불(智異佛)이 되셨다 합니다
스승이신 혜암스님께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석간수 맛이 일품입니다
16:05(5시간35분경과)
삼불사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으며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 도랑으로 고지대에 있는 절이다
세분의 부처가 머문다는 삼불주암에는 늙은 비구니보살님과 사나운 개 한마리가 산다 합니다
그 개의 이름은 관음이라 하는데 보살님도 관음이도 보진 못했습니다
ㅎㅎ
이제 약수암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이곳에서 약수암까지 거리가 젤루 깁니다
알탕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갈길이 촉박해 아쉬운데로 족탕과 세면만 합니다
오른쪽길을 따라 뱅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을 줄이려 지름길로 향합니다
인동초
여기까진 임도길이라 별 문제없지만
길도 없는곳을 대장님만 믿고 무작정 따라 갑니다
ㅎㅎ
한참을 잡목과 싸우며 가다보니 약수암으로 가는길에 들어섭니다
광명을 본 듯 합니다
약수암까지 왔으니 다온거나 마찬가지죠
ㅎㅎ
17:45(7시간15분경과)
약수암(藥水庵)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 지리산 줄기의 작은 산중턱 1㎞ 지점에 위치해 있다.
1937년에 함양(咸陽)의 불자 한정희(韓貞熙)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雲榮) 비구니 스님의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창 공사중이더군요
마지막 배낭털이?
약수샘에서 호스를 연결 경내 마당에 샘터를 새로 만들어 놓을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 실상사로 향합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18:15(7시간45분경과)
중간에 실상사가 보입니다
18:20(7시간50분경과)
실상사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18:30(8시간경과)
칠암자 순례길을 이끌어주신 유정대장님 고맙습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에필로그 -
마음과 생각이 하나로 모일때, 견해와 사유의 범위가 비슷할때...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동지(同志)라고 하죠
곧 뜻을 같이 한다는 말이겠지요
저에게도 지리산 칠암자길을 같이 한 동지들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암자별 설명부분은 다녀온분들의 산행기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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