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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bing/영남권

【13.04.21(일)】19.금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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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에 다시 찾는 금정산... 두번째 발걸음을 해 본다.

원래 대장의 계획은 서문을 들날머리로 하는 4문종주였는데 고당봉-서문간 구간은 특별한게 없으니 금샘을 거쳐 범어사로 하산하는걸로 코스를 바꾼다면 참석하겠노라 압력(?)을 넣었드니 그리 하겠다고... ㅎ

그러던 대장이 4문종주에 대한 미련이 커서 그란지 범어사를 들날머리로 해서 역방향으로 북문-동문-남문-서문-고당봉-범어사로 잇는 코스로 진행 하겠다 한다.

그리하면 마지막 서문에서 고당봉 오름길이 힘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해를 안고 가는 역광이므로 나 혼자 따로 진행하겠다 했드니만 결국 손을 들고 내 계획을 따르기로 한다.

토욜밤 11시.. 사당역에서 28인승 리무진에 자리도 다 채우지 못한채 22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다.

몇해전만해도 원정산행엔 참여인원이 차고넘쳤었는데  연가가 점점 찌그러지는것만 같아 안타깝다.

새벽 2시부터 중계하는 류현진 선발경기를 보면서 가다보니 잠 짓 한번 못한채로 버스는 산성길에 접어든다.

좁은 산성길을 따라 오름하는데 서문쪽을 그냥 지나쳐 계속 오르길래 고새 또 코스를 변경했는가 했드니만 들머리를 몰라서... ㅋ

다시 버스를 돌려 서문 근처 넓진한 장소에 세워놓고 1시간 가까이 차안에서 시간을 보낸 후 서문부터 눈 도장을 찍고 파리봉을 향해 올라선다.

 

 

金井山城(사적 제215호)
이 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년)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 17km, 높이는 1.5~3m이고, 면적은 약 8.2km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이다.
처음에 산성을 쌓은 것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대에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 8년)에 통제사 이지형을 불러들여 왜구의 침략을 방어할 대책을 강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한 언급한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여려차례 있었으나, 1701년(숙종 27년)에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착공하여 이듬해에 성을 준공하였다.

그 후 1807년(순조 7년) 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문을 준공하였고, 이듬해에는 서,남,북문의 문루를 완성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한 금정산성부설비가 장전동에 전해온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까지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용이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 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서문(05:45)- 파리봉(06:15) - 제1망루(06:40) - 상계봉(06:50) - 남문(08:10) - 제2망루(08:20) - 대륙봉(08:40) - 산성고개(08:50) - 동문(09:05) - 제3망루(09:45) - 제4망루(10:05) - 의상봉(10:15) - 원효봉(10:35) - 북문(10:50) - 고당봉(11:30) - 금샘(11:50) - 북문(12:15) - 범어사(12:50)

 

 

 

 

 

서문

 

금정산성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계곡에 세워진 것이 서문이다. 서문의 초루와 ㄷ자 모양으로 조성한 성곽의 모습은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어졌으며 낙동강과 구포, 김해방면으로 왕래한 성문이다. 서문은 호예식문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문루 건물이며, 좌우에는 폭 4m, 길이 5m, 높이 5m규모의 적대와 여장이 복원되어 있다.

서문 북측 대천천의 수문은 교량식 홍예형으로 폭이 약 2.5m, 높이 약 3m 규모의 수구 3개로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수문은 금정산성에서 유일한 것으로 천연요새인 협곡에 서문과 수문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북한산성안에 있는 중성문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파리봉을 오를때 이곳을 들머리로 하면 30~40분정도면 오를 수 있다.

 

 

 

 

 

 

안개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들어낸 파리봉

 

 

 

 

 

 

파리봉은 암봉으로 되어 있다.

 

 

 

 

 

 

파리봉을 오르기 위해선 힘 좀 써야 한다는...

 

 

 

 

 

 

 

 

 

 

 

 

 

 

 

 

 

 

 

 

일출은 구름때문에...

 

 

 

 

 

 

 

 

 

 

 

 

 

 

 

 

 

 

 

 

 

 

 

 

 

 

 

 

 

 

 

 

 

 

 

 

 

 

 

 

 

 

 

 

 

 

 

 

 

 

 

 

 

 

 

끙~

 

 

 

 

 

 

 

 

 

 

 

 

 

파리봉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파리봉(波璃峰)

 

금정산성 제1망루 남쪽에 상계봉이 자리하고 있듯이 제1망루에서 북쪽에는 파리봉이란 또하나의 준봉이 서있다.
이 파리봉 또한 그 위치가 절묘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금정산성의 통과지점이면서 산성마을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것과 도 같아 봉우리 자체가 망루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금정산성은 고당봉에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금정산의 여러 봉우리들은 산성의 동쪽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 파리봉만은 유독 서쪽에 오직 하나의 봉우리로 우뚝 서있어 색다른 느낌이 앞서는 것이다. 금정산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파리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산에 세워 놓은 이정표에도 파리봉으로 기록하고 있다. 향토사학자 주영택씨는 파리봉에 대하여, "금정산 정기에 계시는 부처님과 그 자취는 그 대로 부산 사람들의 기록이요, 역사다.

부산민중의 마음,  바램, 서원의 형상화가 불적이다.
이 불국 정토의 지명도 불명이 되었다. 화엄 천년 고찰 범어사와 딸린 암자, 그리고 옛 이름이 유래되고 있는 지명 가운데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특별히 많다.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원효봉,  의상봉, 파리봉을 들 수 있으며 그는 또 파리봉이 곧 원효봉 의상봉과 함께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는 파리가 유리, 수정(水晶)이라는 뜻도 있으며, 불교에서 이르는 七寶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파리봉은 불교의 칠보 중의 하나인 수정이다.

산정의 바위는 기암괴석이 수정같이 생겨 아침 햇살을 받으면 영롱한 유리알처럼 빛나는 기적을 이룬다.
수정처럼 빛나는 산정의 바위 생김새가 코끼리가 낙동강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산봉우리를 佛名으로 파리봉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는 산성마을 사람들도 그 이름을 거의 모두 '파리봉'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파리봉으로 이름이 굳어진 듯한 이 봉우리의 이름을 유일하게 '파류봉'이라고 기술한 책(《항도부산》제7호, 1969)에는, "죽전마을 전방 산봉이 파류봉이며, 별장(別將)이 파군(派軍)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망미루(望美樓)누각은 없으나 조각기와가 있으며...' 라는 이 짧은 기록에서도 우리들은 산성마을 앞산에는 지난날 별장을 파군하였던 망미루가 세워져 있었고, 그 산봉우리의 이름은 별장을 파군하였기 때문에 파류봉이라 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佛名인 파리봉으로 보아야 옳을 것으로 보인다.

-옮겨온 글-

 

 

 

 

 

 

 

 

 

 

 

 

 

 

 

 

 

 

 

 

 

 

 

 

 

 

 

 

 

 

 

 

 

 

 

 

 

제1망루

 

 

 

 

 

 

 

 

 

 

 

 

 

 

 

 

 

 

 

 

 

 

 

 

 

 

 

상계봉

국립지리원 지도엔 상학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해운대쪽과 광안리쪽이 희미하게...

 

 

 

 

 

 

지나온 상계봉

 

 

 

 

 

 

헬기장에서 아침을 먹고...

 

 

 

 

 

 

 

 

 

 

 

 

 

남문

 

 

 

 

 

 

 

 

 

 

 

 

 

 

 

 

 

 

 

 

 

 

 

 

 

 

 

 

 

 

 

 

 

 

제2망루

 

 

 

 

 

 

진행 할 의상봉, 원효봉, 고당봉이...

 

 

 

 

 

 

꼬깔제비

 

 

 

 

 

 

각시붓꽃

 

 

 

 

 

 

대륙봉

국립지리원 지도엔 동제봉으로 표기 되어 있다.

 

 

 

 

 

 

 

 

 

 

 

 

 

 

 

 

 

 

 

 

 

 

 

 

 

 

산성고개

 

 

 

 

 

 

 

 

 

 

 

 

 

동문

 

 

 

 

 

 

 

 

 

 

 

 

 

 

 

 

 

 

 

 

 

 

 

 

 

 

 

 

 

 

 

 

 

 

 

 

 

 

 

 

 

 

 

 

 

 

 

 

지나온 상계봉과 파리봉이 건너다 보이고...

 

 

 

 

 

 

 

 

 

 

 

 

 

 

 

 

 

 

 

 

제3망루

 

 

 

 

 

 

 

 

 

 

 

 

 

 

 

 

 

 

 

 

 

 

 

 

 

 

 

 

 

 

 

 

 

 

 

 

 

 

 

 

 

 

 

 

 

 

 

 

 

 

 

 

 

 

 

 

 

 

 

 

 

 

김유신 솔바위

 

원효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에는 높은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 틈서리에는 어른 키만한 땅딸보 소나무가 박혀 있는데 김유신 장군이 원효봉 부근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다보니 선 채로 소변을 보았는데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한다.
이 땅달보소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르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는데 혹시 저 바위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그 소나무는 아닐런지...

 

 

 

 

 

 

 

 

 

 

 

 

 

 

 

 

 

제4망루

 

 

 

 

 

 

의상봉

 

의상봉(620m)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윗쪽의 봉우리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봉우리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금정산 산신령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 봉우리로 변해 위쪽에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虎峰)이 되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龍峰이 되었다. 이 두 봉우리를 합쳐 龍虎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이라 명명하여 오늘에도 부르고 있다.

 

 

 

의상봉에서

 

 

 

 

 

 

의상봉에서 바라본 원효봉과 고당봉

 

 

 

 

 

 

 

 

 

 

 

 

 

龍峰/虎峰

 

 

 

 

 

 

 

 

 

 

 

 

 

뒤 돌아본 의상봉

 

 

 

 

 

 

원효봉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 놓아 「으뜸의 새벽」 원효봉(687m)로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고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봉우리다.

 

 

 

 

 

 

 

 

 

 

 

 

 

 

 

 

 

북문

 

 

 

 

 

 

 

 

 

 

 

 

 

10여년전에 왔을때만해도 안전시설이 전무해 암릉으로 오르내려야 했었는데, 지금은 171개의 데크계단으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모당(姑母堂)


금정산 고당봉에 있는 고모당 내부에는 고모영신(고당할미)과 산왕대신(금정산 호랑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고모영신은 그 품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주는 '영원한 어미'로서의 여성 山神이다.

일년 중 가장 양기가 황성한 5월 단오날 범어사에서 고당재를 지내고 있다.
금정산 고당봉에는 평생을 불심으로 살다간 밀양 박씨 화주보살의 이야기가 서려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밀양 사람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 임진왜란으로 잿더미가 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신명을 바쳤다.

어느덧 나이가 많아 이 보살은 큰스님에게 "제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영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재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습니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큰스님은 그 유언데로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해마다 단오날에 제사를 지냈더니 과연 범어사가 번창한 사칠이 되었다고 한다.

 

 

 

고당봉(姑堂峰 801.5m)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이며 금샘(金井)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당봉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금정구에서는 1994년 8월 '금정산표석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이름 찾기 고증작업이 추진되었다. 여기서 '姑堂峰'과 '高堂峰'의 두 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오랜 토론 끝에 "우리나라의 모든 산에는 산신이 있고, 고려때까지 내려오는 모든 산신은 女神이었다.

금정산의 고당봉도 할미신이므로 할미 고, 집 당의 姑堂峰이 옳다" 는  우리나라 고유의 샤머니즘의 민속신앙에서 고당봉과 연계하는 학자 및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姑堂峰으로 확정되어 표석비를 세웠다.

 

 

 

지나온

 

 

 

 

 

 

광안대교는 연무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고당봉에서 금샘쪽으로 내려서는 곳도 이리 안전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금샘(金井)


금정산의 유래는 1432년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와 1481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금정산 서북산정에 바위가 있는데 샘은 둘레가 10자(3m) 남짓하며 깊이는 8치(21cm)쯤 된다. 물이 항상 넘쳐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빛깔은 황금과 유사하다.

옛날 황금색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구름을 타고 梵天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헤엄치며 놀았으므로 금샘이라 불렀고 범어사의 창건설화가 시작된 곳이다'
가뭄이 들며 기우제를 지내던 곳 이었고 황금색 물고기가 노닐던 금샘은 생명의 원천, 창조의 모태인 다산을 기원하는 성소였다.

 

기록에 나와 있는것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데 과연 이 샘이 기록에 나와있는 금샘인지 몰라.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로는 스님이 아무몰래 새벽에 올라와 물을 부어 놓는다는 설도 있고, 물이 마를때쯤이면 비가 내려 물이 채워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다들 독사진을 담아주고 나두...

 

 

 

 

 

 

 

 

 

 

 

 

 

다시 북문으로

 

 

 

 

 

 

범어사 경내로

 

 

 

 

 

 

 

 

 

 

 

 

 

 

 

 

 

 

 

 

범어사는 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소각장도  품격이 느껴진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여늬 일주문과 달리 4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는게 특징이다.

 

 

 

 

 

 

 

 

 

 

 

 

 

긴 걸음을 마친다.

 

 

 

 

 

 

 

 

 

1시전에 산행을 마친터라 시간여유도 있길래 기장으로 이동 멸치회무침이나 먹어볼까 했는데 기사는 차가 많이 밀린다고 근처에서 간단하게 먹고 올라가는게 좋겠다 하고,

몇몇이서도 그게 좋겠다 동조를 하니 내가 쏠것도 아니니... 쩝~ 결국 근처 돼지국밥집에서 돼지국밥 한그릇 먹고 귀경길에 오른다.

사당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도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