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했는데...
지난날의 추억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와 차마 견디기 힘들어 4년만에 다시 봉산골을 찾는다.
봉산골은 반야 중봉에서 분기한 전남북 도계능선과 달궁능선 사이에 위치한 계곡으로 봉산폭포를 지나 해발 1100m 부근에서 좌골과 우골로 갈라진다.
오늘 찾는 좌골은 오지에서나 만날 수 있는 환상적인 이끼골로 지리산의 비경을 품고 있으며 우골은 협곡에 곧추선 암벽으로 거친 야성미를 품고 있다.
예로부터 좋은 소나무가 많았던지 왕실에 사용할 소나무 보호를 위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봉해놓았다하여 '봉산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고 햇볕조차 잘 들지 않는 응달진 깊은 계곡이라 지리산에서 가장 늦게, 5월 하순까지도 얼음이 남아있다하여 심원계곡과 더불어 '얼음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쟁기소-봉산골-좌골-심마니능선-중봉-묘향암-삼도봉-화개재-반선
04:40
최근 봉산골을 다녀온이들의 산행기에 당당하게 다리를 건너는 사진들이 있어 우리도 편안하게 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왠걸~
닫쳐있는 출입문에 자물쇠로 잠가놓아 계곡으로 내려서 계곡을 건넜는데 뒤 따르던 일행들이 어찌 문을 연건지 다리를 통해 건너고들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물쇠는 fake였다는데 내가 순진한건지...ㅠㅠ
사면길과 계곡치기를 번가르며 봉산골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1시간 정도면 치마폭포를 만나게 된다.
삿갓폭포라 하기도 한다.
05::50
에너지를 보충하며 한타임 쉬어간다.
작지만 아름다운 폭포들이 이어진다.
와폭도 있고...
06:40
봉산폭포까지 2시간
봉산폭포는 2011년 태풍 '무이파'때 산사태로 인해 2/3정도가 매몰되고 상단부쪽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태전 봉산폭포 모습
폭포물줄기를 표현한다고 셔터속도를 느리게 하다보니 미세한 흔들림으로 사진이 또렷하진 못하다.
팔각대의 한계다.
07:00
봉산폭포를 지나 5분정도 올라서면 좌골과 우골로 갈라지는 합수점에 닿는다.
우골초입에 있는 이 폭포는 사태로 새로 생겨난 폭포로 우골폭포라 부른다.
단체인증을 하고 좌골로 들어선다.
이끼계곡으로 불리는 좌골로 들어서면 오지에서나 만날법한 비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천혜의 비경이다.
물을 피해 대부분은 이 비경길을 마다하고 숲길을 따라 올라선다.
일행이 담아준...
07:40
후미를 기다리며 한타임 쉬어간다.
아~ 힘들다.
어디쯤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골을 건너다 스틱이 미끌리면서 고꾸라져 손가락과 허벅지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통증이 심해져 오면서 점점 컨디션이 다운되간다.
심마니능선에 가까워지면서 만복대와 서북능선도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받은 나뭇잎들이 아름답다만 햇살이 뜨겁다.
중봉으로 향하는 풀밭길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09:30
중봉 헬기장까지 4시간 50분
지금쯤이면 범꼬리가 많이 보일텐데 멧돼지란놈이 주변을 온통 헤집어 놓은통에 몇개체만 보인다.
연안김씨 묘소의 봉분까지도 헤집어 놨다.
중봉 정상에 올라 천왕봉쪽을 조망한다.
천왕봉에서 영신봉까진 구름에 가려 보이진 않고...
반야봉은 패스하고 바로 묘향암으로 내려선다.
컨디션이 다운돠서 그런지 묘향암으로 가는 길이 참 길게 느껴진다.
10:05
묘향암에 내려서니 처음보는 스님께서 반가히 맞아 주신다.
법명을 여쭈니 묘천이라신다.
호림스님은 좀 무뚝뚝한면이 있었는데 묘천스님은 서글서글하다.
호림스님은 여원이랑 남원으로 외출나가셨다 하는데 이제 호림스님도 큰스님 반열에 오르셨을텐데 탁발나가신건 아니겠죠?
묘향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1,480m대에 위치한 암자로 천왕봉 아래에 있는 법계사보다 50m 높은곳에 있다.
토굴형태로 시작된 묘향암은 1970년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한다.
함석을 이어붙힌 지붕과 법당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좌우에 하나씩 달린게 초가 3간을 연상케 하는 구조다.
묘향암의 법당은 부처님과 중생을 구분하지 않는 不二의 공간이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릴 때는 기도의 공간이지만, 잠자리를 펴면 중생의 공간이 되는 호림스님의 생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일광이가 지내던 공간은 여원이(진돗개)가 물려 받았을뿐 그 모습 그대로다.
일광이는 올 1월에 몸짓 큰 동물에 크게 물리고나서 극락세상으로 떠났다 한다.
아마도 반달곰은 아닐테고 멧돼지의 소행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법당 옆 뒷쪽엔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가 톰방톰방 떨어져서 고이는 감로전이 있다.
감로전의 석간수는 속세의 만병을 한꺼번에 낫게 해줄 것 처럼 차갑고 넉넉하다.
감로전 옆에있는 물고기를 닮은 바위가 보인다.
목어를 석어로 대신하는 듯 하다.
다 비운 물병에 석간수를 채워 넣는다.
법당 옆으로 예전에 없던 산신상을 모셔놨길래 의아해 여쭤보니 어떤 보살님과 연이 닿아 올 1월부터 모시게 됐다 한다.
전과 같이 이번에도 시주로 준비했다.
친구와 한봉씩 나눠 짊어지고 왔지만 이것도 무게가 부담스러운게 담에 올땐 좀 가벼운 물품으로 바꿔야겠다.
가장 긴요한게 부탄가스라는데 쌀보다는 덜 무겁겠지?
올 5월 남부능선종주때 형제봉 활공장에서 반야봉과 묘향암을 바라봤는데 오늘은 이곳에서 형제봉을 바라본다.
형제봉 활공장에서 바라본 반야봉과 묘향암
단체사진을 찍을때마다 완전체를 못 이룬다.
이번엔 누가 빠졌는지...
11:05
묘향암에서 1시간동안 머물다 반야봉 아랫도리길을 따라 삼도봉으로 발길을 옮겨간다.
삼도봉 삼거리까지는 1.6km
컨디션 난조로 힘이 부치는게 죽을맛이다.
가는길에 지류에 흐르는 물에 얼굴도 적시고 발도 적셔 보지만 컨디션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다.
팔과 손에 힘도 빠져 스틱을 잡는것도 힘에부쳐 배낭에 접어넣고 걸음을 이어간다.
12:05
주능선에 들어서 삼도봉을 목전에 두고 잠시 그늘에 앉아 숨을 돌린 후 삼도봉에 올라선다.
원래 이름은 낫의 날을 닮았다 해서 낫날봉으로 불리던게 발음이 변질되면서 날나리봉으로 불리우다 국공단에 의해 삼도봉이란 새 이름을 부여받은 峰이다.
어떤이들은 봉 같잖은게 봉 이라 한다해서 날나리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반야봉 아래 노루목에서 삼도봉까지의 고도차가 크지 않다보니 그러지 싶다.
참고로 울 나라에 삼도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세개인데 모두 백두대간 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무주 대덕산 전에 있는 초점산 정상(1,248m)은 경남,전남,전북을 경계하고 있고 이 곳 반야봉 아래 삼도봉(1,550m)은 경남(하동)과 전남(구례), 전북(남원)을 경계하고 있다.
삼도봉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충북영동과 경북김천, 전북무주를 경계하고 있는 민주지산의 삼도봉((1,177m)인 경계를 가르는 도가 완전히 달라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화개재로 향하는 긴 계단길을 내려설때마다 계단수를 헤아려보게 되는데 매번 중간에 까먹는통에 아직도 몇계단인지는 모른다.
이번에도 계단수를 헤아리며 내려가 보지만 300개을 넘기면서 또 까먹는다.
머리가 나쁜게다.
12:20
이제 반선까진 9.2km
지리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막차까지 1km구간이 급한편인데 발을 내디딜때마다 전해져 오는 허벅지 통증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걸음걸이가 정상이 아니다보니 다리에 쥐까지 찾아 올 기미가 보여 그잖아도 힘든걸음을 더 힘들게 한다.
12:45
힘겹게 막차까지 내려왔다.
이제 남은거리 8km
이제부턴 완만해지는 길이라 이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트런하듯 잰걸음으로 앞서가는 일행들을 하나 둘 따라 잡는다.
10명정도는 따라잡은 것 같다.
14:05
화개재에서 와운삼거리까지 7km, 1시간 45분만이다.
이제 반선까지는 계곡 데크길을 따라 2km
반선교를 500여미터 남겨두고 계곡으로 내려가 풍덩하고나니 좀 살 것 같다.
15:00
반선교를 건너 일출식당에서 걸음을 마친다.
보통은 아무리 힘든 산행을 하고도 산행을 마치고 나면 힘듦은 사라지는데 오늘은 컴백홈할때까지 그 힘듦이 사라지질 않는다.
기절한채 귀경길에 오르고 컴백홈 하자마자 배낭정리도 못한채 그대로 나가 떨어진다.
그렇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손등이 좀 부어있긴 하나 통증은 많이 가라앉아 무리없이 일상을 이어간다.
아직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보면 약간의 통증은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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