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리 - 옥양봉 - 석문봉 - 가야봉 - 남연군묘 - 상가리
충남 서산시와 예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은 예산, 당진, 서산, 태안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떨치는 산이다.
산은 그 자체로 서해를 향해 호령할 듯 우뚝 서 있다. 산세 또한 암산으로 이루어져 기암들이 징검다리 마냥 하늘을 받치고 있다.
한남금북정맥 칠현산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의 산답게 당찬 힘을 발휘한다. 가야봉에서 석문봉까지 암릉을 형성한 후 두 줄기로 나뉘어 일락산과 옥양봉, 수정봉을 향해 갈래친다.
15년만에 두번째 걸음이다.
상가리 주차장까지 146km / 2시간 15분
아침공기가 조금은 싸~하지만 햇살이 나면서부턴 봄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포근한 날씨다.
우측길로 올라 좌측길로 내려 올 예정이다
여기서부터 쉬흔길바위까지 500여m의 깔딱길이 시작된다,
15년전엔 가야산 어디에도 이런 계단은 없었다는
가야봉 정상쪽의 모습은 관악산과 흡사하다.
상가리 마을과 멀리엔 용봉산과 연결된 수암산?
옥양봉까지 1시간 20분/3km(09:05)
뒤 돌아본 옥양봉
석문봉까지 2시간/4.5km(09:45)
커피한잔씩
해미읍 뒤로 서산 팔봉산이 희미하게 시야에 잡힌다
옥양봉
석문봉은 가야산에서 가장 조망이 뛰어나고 풍광 또한 최고다
10:45
가야봉까지 3시간 40분/6.1km(11:25), 실제 가야봉은 중계탑 뒷쪽에 위치하고 시설물 설치를 하면서 산을 깍아 높이도 10m정도 낮아진 상태다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아직은 응달엔 빙판이...
가야봉과 바로 연결되는 이 길은 옥양봉 깔딱길보다 더 급하다. 이런 길을 15년전에 꼬맹이를 업고 내려갔으니. 그것도 눈 쌓인 길을...
우측에 있는 전각엔 남은들상여가 보관되어 있다.
대원군이 부친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덕산면 광천리 마을에 하사했다고 전하는 궁중식 상여이다.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보관중에 있으며, 이곳 상여 보호각에 전시된 복제품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201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국립고궁박물관
진품 실측과 정밀 실측 보고서를 근거로 상여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전흥수 대목장이, 유소[매듭]는 무형문화재 32호 배순화 매듭장이 제작하여 보호각에 전시하고 있다.
봄이로쎄~ 개불알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남연군묘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이다.
높은 언덕에 반구형 봉분이 크게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 석물과 비석이 서 있다. 원래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던 무덤을 1846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이하응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남연군의 무덤자리를 찾기 위해 지사(地師) 정만인(鄭萬仁)에게 부탁하였는데, 그는 지금의 자리를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지목하였다.
이곳에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원래 묘자리에는 탑이 있었는데, 대원군은 절을 없애고 남연군의 묘를 옮겼다.
묘를 옮긴지 7년 후 차남 명복(命福)을 낳았는데, 철종의 후사(後嗣)가 없어 가까운 종손인 명복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고종(高宗)이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훼손하였는데, 관(棺)에는 미치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고, 대원군은 쇄국(鎖國)과 천주교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 아침 주차장에 들어섰을때만 해도 달랑 한대 뿐였는데 산행을 마치고 나니 주차장이 가득 차 있다. 대형주차장에도 산악회 버스가 13대나 주차 해 있고...
시산제를 마친 산악회에서 막걸리와 떡을 얻어 먹고 바로 귀경길에 올라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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