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번 산행기를 공개로 해야할지 비공개로 해야할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도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 대부분이 산을 다니시는 분들이라 여기기에 우리모두 경각심을 갖고 산행에 대한 안전의식을 되세겨 보자는 취지로 공개를 합니다.
부디 부정적으로 보지 마시고 공감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계절은 봄을 향해 달음질 친다.
이미 아랫동네쪽에선 홍매화가 기재개를 편지 오래고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노루귀들도 기지개를 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삼한사온이 다시 온 듯 몇날 깜짝추위가 이어지긴 하나 바람결에선 봄의 향기가 느껴진다.
봄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론 가는 겨울이 아쉽기도 하다.
떠나가는 겨울!
그 끝자락을 잡아보려 다시한번 설악의 빙곡을 찾아 나서본다.
용대리 - 영시암 - 가야동계곡 - 작은공가골 - 노인봉 - 범봉안부 - 100미폭상단 - 잦은바위골 - 소공원
04:00
용대리 출발
06:00
쉼 없이 걸었더니 영시암까지 2시간/11km
07:30
도둑걸음을 하다보니 오세암길로 빙~ 돌아 가야동계곡에 들어선다.
장비들 착용하고
빙폭은 직폭이라 오르지 못하고 바위를 올라서야 하는데 아이젠 착용이 일렀다.
생각보단 빙질상태가 좋다.
여름엔 다이빙을 하던 곳인데...
08:20
가야동계곡에 들어선지 50분만에 천왕문에 닿는다.
얼음길을 따르다보니 평소보단 15분정도 빠르다.
자일확보를 한다면 먼저 올라선 ㅊㅅㅁ님이 미끄러져 떨어지고 발목에 부상을 입는다.
신발을 벗기고 상태를 확인 해 보니 발목이 부어 오른게 아무래도 골절상이지 싶다.
떨어질때 아이젠피크가 얼음에 박히면서 발목이 꺾인 것 같다.
바로 이어 저 곳을 오르던 ㅇㄷㅌ님이 중간쯤 오르다 슬라이딩 한다.
다행히 완만한 경사라 경미한 무릎타박상만 입고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대장은 아이젠피크 사용법을 알려주는데 알려주면 뭐하노 금방 까 먹는데...
들것을 만들어 오세암-봉정암간 탐방로까지 환자를 후송한다.
탐방로에 들어서 119에 구급요청을 한 후 환자와 일행 다섯명을 남겨두고 작은공가골로 들어선다.
11:55
공룡길에 들어설때쯤 헬기가 도착했다.
환자는 헬기로 후송되고 다섯명의 일행들은 오세암을 거쳐 마등령길로 올라선다는 기별이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한대장한테 마등령으로 가자 하니 공룡길을 따르면 1278봉과 큰새봉, 나한봉까지 세번의 큰 오르내림이 있어 그런지 더 힘들다며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 했드라면...
뒤 늦은 후회지만 왜 그때 좀 더 강력하게 말리지 못했던가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든다.
노인봉으로 올라선다.
12:15
노인봉
용아장성과 뒤로 귀떼기청, 우측멀리로 안산이 희미하다.
범봉안부로 내려꽂 듯 내려선다.
얼마나 바위가 고팠던지 강풍까지 불어대는 이 날씨에 범봉등반을 마치고 하강을 하고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13:10
범봉안부에서 100미폭 상단골로 내려꽂 듯 내려선다.
13:40
100미폭 상단골에 내려서고
백미폭 상단에서 후미그룹을 챙겨 우회길을 따라 뒤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사고가 났음을 직감하고 서둘러 가 보니...
아~~~
저 윗쪽을 내려서기 전에 사고가 난게다.
가파른 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이긴 하나 그 곳은 빙판진 곳도 없었는데 한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마지막 후미까지 계곡을 건너는걸 확인하고 자일을 회수해 서둘러 올라가 보지만 또 한번의 급한 내림길에서 후미그룹이 정체되어 있다.
앞서 내려가 한명한명 발디딤을 서포트해 내려보내고 뒤따라 잦골길에 들어선다.
벼랑끝으로 가 보니 참담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상태를 물어보니 의식은 있다한다.
그 말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울컥 눈물이 난다.
추락거리만 해도 100m는 훨 넘어 보이는데 살아있다는게 기적일뿐이다,
하지만 상태는 심각해 보인다.
다발성 골절이 의심되는 상태라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배낭속에 있던 방한복을 꺼내 덮어주고 의식을 잃지 않게 계속 말을 걸어주고 있다.
핫팩 두개를 던져줬지만 하나는 닿질 못하고...
먼저 내려와 있던 수락산 형님이 119에 구조요청을 하고 몇차례 구조본부와 통화를 하는데 정확한 위치설명을 못한 것 같아 다시 구조본부에 전화해 gps좌표를 알려주니 곧 헬기가 도착할거라며 헬기가 보이면 렌턴불빛으로 위치를 확인시켜 달라한다.
그리고 나서 5분정도 지나니 헬기가 날아온다.
바위에 올라가 렌턴불을 밝혀 위치를 확이시켜 주고 손짓으로 환자방향을 가르켜 주니 헬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계곡쪽으로 접근해 구조대원 두명을 내려 놓는다.
헌데 구조대원들이 아이젠이 없는지 구조준비를 못하고 시간만 허비한다.
무전연락을 받았는지 선회하던 헬기가 다시 돌아와 아이젠을 내려주는데 그마저도 한개뿐인지 다른 한명은 얼음에 내려서지도 못한다.
촌각을 다퉈야하는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구조대 한명이 올라가 대장이 차고 있던 아이젠을 빌려 다른 구조대원에게 전달한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진척이 보이지 않더니 돌아갔던 헬기가 다시 와 2명씩 두번에 걸쳐 구조대원을 내려 놓는다.
하지만 이미 너무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더 이상 버티질 못했는지 희미하게 남아있던 의식도 사라져 갔다 한다.
그런 그를 수습하고 있는데 개스까지 내려 앉는다.
선회하고 있던 헬기는 시야확보가 안 되는지 접근을 못하고 돌아가 버린다.
결국 차가운 계곡에 고인만 남겨둔채 모두가 철수한다.
40년 가까이 산길을 걸으며 크고작은 사고를 접하기도 하고 나 또한 작년가을 당사자가 되기도 했지만 그저 크고작은 부상들뿐이었지 오늘같은 사고는 처음인지라 현실을 접하고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19:15
착참한 마음을 안은채 잦골 입구에 내려오니 국공 세분이 기다리 있다.
당연 사고내용을 통보 받았을터...
적발확인서에 서명하고 잦골을 빠져 나온다.
지기 한명을 산에 둔채 돌아오는 마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故 둘건님(이건/향년59세)
그간의 산행기들을 뒤져보니 님과 함께 걸음한 산행이 지난 1월 지리산과 이번 설악산 두번 뿐인 것 같습니다.
그 두번의 산행길에 대화는 커녕 님의 얼굴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님을 알게 알게 되었습니다.
타 산악회에서 산행대장도 하실 정도로 산행능력도 출중하시다는데 어찌...
님은 가셨지만 누구나 자연앞에선 진중함과 겸손함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남기셨습니다.
부디 좋은곳에 영면하시어 남은 가족분들의 안녕을 지켜주시기 기원합니다.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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